'자본론의 현대적 해석' 김수행 '서문' 주석 부분 평 인문학 읽기

자본론은 대강이나마 본 경험이 있었으나(분량이 너무 방대해 다 읽지는 못하였습니다. 대충 2부까진 읽은 듯.) 그것에 대해 편리하게 해석해놓은 책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 참에 졸업하기 전에 읽어보자는 심보로 김수행 교수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중이다. 뭔가 새롭게 배운다는 느낌은 별로 없지만 전반적으로 내용이 쉽고 이해하기 좋게 쓰여져 있어서 자본론을 읽다가 어려워 때려치신 분들께는 한 번쯤 추천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헤겔에 대한 비판에 이르러서는 다소 오버한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읽은 자본론이나 타 저작에 등장하는 맑스의 헤겔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적확하다 평가하기 이전에, 그래도 정황상 이해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김수행 교수의 비판은 부분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헤겔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다. 쉽게 표현하자면 1. 헤겔은 현실을 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맑스는 현실을 동적으로 받아들인다. 2. 헤겔은 프러시아를, 맑스는 공산주의를 최종 목표로 설정하였으나 그 의미는 다르다. 3. 헤겔은 이념(idea)을 기반으로 설명하지만 맑스는 이념을 경제적 토대 위에 세워진 의존적인 상부구조로서 해석한다. 이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것은 3번 뿐이다.

1번의 경우에는 헤겔의 유명한 명제라고 할 수 있는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다.' 라는 문장을 오독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여기서 등장하는 현실적이라는 개념이 즉자적일 필요도 없고, 또한 이미 정신현상학 등에서 세계를 동적으로 해석한 헤겔이 미쳤다고 그렇게 적어둘 이유가 없다. 사실상 헤겔은 맑스와 같이 세계의 부정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논리를 채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기엔 맑스는 이러한 헤겔의 기본적인 맥락을 대부분 그대로 수용했다.

2번의 경우는 사실 좀 창피한 경우인데... 맑스주의에 대해 관심이 깊거나 혹은 연구하신 분이라면 누구나 맑스의 법철학 비판을 읽어보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2번의 경우에 대해 왜 틀렸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하신다면, 이 분들의 경우 정작 헤겔의 법철학은 읽지 않았다는 일련의 증거로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프러시아 떡밥은 임석진 선생의 번역본인 법철학 책의 역자 서문에도 사실 반박되어 나와있는 매우 기초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반박하는 이들에 따르면 헤겔의 강의노트에 등장한 '프러시아'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완성태적인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강의노트들이 상당히 최근에 발견되었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을 법한 오해일 수 있겠으나, 그러한 주장이 등장했다면 당연히 저자는 오해한 부분에 대해 확인할 의무는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본인도 독일어를 할 줄 몰라 법철학 역자의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확언해드릴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죄송스럽다.

여튼 이 헤겔의 프러시아나 공산주의가 실체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하나의 비유법에 지나지 않는다면 맑스는 또다시 헤겔에게서 종착점에 대한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들의 이론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많은데, 그럼에도 사실 알아가다보면 둘 사이의 이론 사이에 심각한 차이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역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둘 사이의 차이점과는 꽤 다를 수 있다.

3번은 사실상 칸트의 이율배반과 같은 문제다. 헤겔의 엔치클로페디에는 분명히 이념은 그 자체로 운동한다는 뉘앙스의 내용이 있는데, 이는 이념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순수한 존재의 언명이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정신으로 귀결되고 또 시작되는 순환 구조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언명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하다. 하지만 맑스의 경우에는 이를 기각한다. 그러나 이 둘이 서로 어떤 충돌을 일으키는지는 알 수 없으며 오히려 서로의 전제의 독립성에 대해 논의해야 할 문제가 될텐데, 개인적으로는 이 두 가지 전제는 마치 수학의 연속체 가설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설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전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간지나게 짝수와 홀수 쪽에 각각 나열해두었던 이율배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더 읽어봐야겠다. 책이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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